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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청소면 문학 공모전 대상작 (오가연 학생)
작성일 :  2023-11-07 이름 : 폴앤다니엘 기독학교

학생명 : 오가연

제 목 : 따뜻한 명왕성

응모부문 : 수필

수상 : 대상

 

 

엄마에게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다 주었다못다 핀 꽃봉오리 사이로 노란빛을 야금야금 드러내며 한동안 비어있었던 유리병을 채웠다아마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엄마는 노란 꽃을 볼 때마다 당신이 좋아하는 예쁜 프리지어 이야기를 해왔을 것이다꽃집을 나와 집에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한 시간 동안창밖의 쏜살같이 지나가는 어지러운 풍경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자 옹기종기 모인 찬란한 꽃봉오리들이 눈에 들어왔다사이사이로 보이는 노란색들이 엄마 얼굴을 서물서물 떠올리자 가슴이 시큰하게 저며왔다.

우주의 9번째 자리를 채우던그러나 태양계에서 쫓겨나 영원히 이방인이 된 소행성나는 명왕성 같았다엄마 아빠는 내가 세 살 때부터 따로 떨어져 살았었다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많은 사람들 손에 맡겨지며 자라왔다도저히 맞물리지 않는 두 문짝이 서로를 자꾸 긁고 밀다가 생겨난 부스러기처럼 이곳저곳을 굴러다녔다눈칫밥을 한두 끼 먹은 것이 아니다작고 어려서 사랑받았으니 망정이지엄마와 아빠가 살림을 다시 합친 후로도 이사를 수없이 다녔다뿌리내릴 새도 없이 나는 어떤 표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부표 같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다외로웠고 지긋지긋했다처음으로 연고가 없는 동네에 이사 갔을 때마침내 우리 가족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했다아빠는 사업을 시작했고엄마는 여전히 바빴지만다 같이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아빠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집을 울려 이불 속에 숨기도 하고엄마가 울던 모습에 놀라 가슴을 졸이기도 했지만나는 여전히 우리가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사랑했다.

너 정말 이럴래?”

열한 살어느 학교 가는 날 아침에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내가 뭐 때문에 혼났는지는 가물가물하다아마 밥 먹는데 TV를 계속 쳐다봐서 혼났던 것 같다나는 어린 마음에 그 말에 크게 상처를 받고 울었었다아빠의 출근길과 내 등굣길이 겹쳐서 차를 타고 가는 아빠를 만나면 인사를 하곤 했었는데그렇게 상처받고서는 딱 그날만 아빠의 인사를 못 본 체했던 기억이 난다무시당한 아빠의 표정이 하루 종일 신경 쓰인 탓에 다음부턴 혼이 나도 웃으며 인사하겠다는 다짐도 했었다너무 미안해서 아빠의 마음을 위로해달라는 기도도 하고그 얼굴이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주르륵 나오기도 했었다그랬던 내 마음을 떠올려 보자면나는 아빠를 많이 사랑했었다나는 아빠를또 엄마를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했다아빠의 뾰족한 말들에 상처받고내가 잠들 때나 오던 지친 엄마의 발소리가 밉기도 했지만나는 그래도 두 사람을 사랑했다하나뿐이던 작은 식탁 위에 서류 봉투 같은 것들이 놓이기 시작한 후부터엄마와 아빠는 웃지 않았고더 이상 아침도 함께 먹지 않았다열세 살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아빠가 집을 떠난 날사랑이라는 말이 내 안에서 툭 떨어져 나갔다단추가 떨어져 나가서다시 비슷한 것을 찾아 달지 못해서 다 잠그지 못하는 셔츠가 옷걸이에 너덜너덜 걸려있었다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그런 것에 빗대어 바라보았다.

나는 엄마를 잘 몰랐다어릴 때부터 엄마는 아빠의 커다란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듯했다내가 여덟 살 되던 해다시 살림을 합치기로 결정한 엄마 아빠가 할머니 댁에 있던 나를 데리러 왔었다엄마와 다섯 살에 헤어졌던 탓인지엄마를 다시 만났을 때 꼭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네 엄마야.”

눅눅한 겨울밤차에 앉아 엄마가 이것저것 건넨 말들이 어렴풋이 기억난다막 여덟 살이 되었던 1월의 나는 엄마의 눈에 잠잠히 있던 슬픔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그리움과 낯설어하는 나의 모습에 아프면서도 미안한 마음들이 한데 뭉쳐 목을 꽉 메이게 했을 것이다그런 것을 눈물과 함께 꿀꺽 삼키고 내 머리를 쓰다듬던 것이 가만히 떠오른다어린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한 지가 꽤 오래된 탓에엄마의 모든 손길이 낯설기만 했다같은 집에 살기 시작하고같은 침대에서 잠들기도 하면서나는 엄마가 있는 삶에 익숙해져갔다더 이상 엄마는 해마다 바뀌는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매일 밤 잠들기 전 엄마의 따듯한 품속에 들어가 있을 때면당연한 듯 변하지 않을 사랑이 간질간질 나를 간지럽히곤 했다그럼에도아빠의 짙은 그림자는 엄마를 드리우고 있었다엄마와 만든 추억들을 꼭꼭 모아 선을 그려 보아도 선명한 윤곽이 그려지지 않았다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알았지만엄마는 여전히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졌다.

나는 아빠를 닮았었다아빠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배운 점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아빠는 꽤 부드럽고 서글서글한 사람이었다청소하는 것을 좋아했고그림을 잘 그렸고기타도 잘 쳤다아빠는 아주 열심히 뭔가 극복하려고 애써 달려온 사람이었고본인이 걸어온 길을 잘 알고 있었다잘 알았기 때문에당신을 꼭 닮은 내가 당연히 그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하지만 좋은 것만 골라 닮지 못하고 약점마저도 가져와 거울처럼 당신을 비출 때아직도 극복하지 못했던 그 약점들은 가시가 되어 아빠를 찔렀다상처받은 아빠의 마음은 또 다른 가시가 되어 자주 나와 엄마를 향했다아빠와 엄마우리는 모두 거울 속에 비추인 스스로와 눈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없는 연약한 마음을 갖고 있었나 보다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될 때그 반사의 과정을 단단히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왜 단 한 명도 없었을까두 사람은 같은 지붕 아래서 각자의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을 깨닫고결국 산산이 부서지기로 작정했던 것이다그렇게 아빠는 떠났다.

아빠와 보냈던 시간들 속에서 나를 먹이고 움직이게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나에게 마치 기름진 토양과 같았다태양같이 나를 채우던 아빠의 인정과 칭찬은 내가 하는 모든 것의 원동력이었다나를 무럭무럭 길렀던 사랑의 갑작스러운 부재나는 난데없이 낯선 땅으로 옮겨진 어린 식물처럼 조금씩 메말라갔다직장에서 흐르는 매시간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겠지만내가 있는 텅 빈 집에까지 닿기엔 한계가 있었다홀로 집에 남아있는 동안 도무지 가시지 않는 통증의 원인을 짚을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내가 안은 모든 외로움의 책임을 엄마의 연약함으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나 안 사랑하잖아엄마도 좀 아빠처럼 해주면 안 돼?”

아빠만큼 시간이 많지 않고아빠만큼 칭찬해 주지 않는 엄마가 도망쳤을 뿐이라는 생각에 나는 종종 몹쓸 비수를 던졌다나는 몰랐다사랑의 모양이 다양하다는 것을그럼에도 엄마는 애써 나를 사랑했다나의 불안정함이 엄마를 마구마구 찔러도 꿋꿋이 서서 나를 기다렸다외로운 타지에서 엄마는 나를 위해 도망치지 않고 수년간 괴로운 외사랑을 버텼다.

15살의 사춘기가 찾아왔고처음으로 나와 사람들이 다르단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모든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나는 나와 다른 새로운 것들을 동경했다나는 마치 집을 옮기고 다니는 달팽이 같았는데친구들은 한 동네에 태어날 때부터 살아와서 무슨 버스를 타면 어디를 갈 수 있는지 잘 아는 것이 신기했다잦은 이사로 오래 안 사람이 없었던 내게는 같은 유치원같은 초등학교를 나와 형제자매처럼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항상 집에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간식을 챙겨주고 숙제 검사도 해주는 부모님이 신기했다여행도 식사도 뭐든지 함께하고서로 농담도 따먹으며 사랑하는 말들을 하는 부모님이 나는 간절할 만큼 부러웠다내가 받은 사랑은 밟으면 바스러져버릴 낙엽처럼 하찮아 보였다이 가시 돋친 열등감은 마음의 쓴 뿌리가 되어 나를 파고들기 시작했다나는 엄마의 관계에서는 물론나는 사귀었던 많은 친구들과도 멀어졌다나를 잇던 모든 것들이 끊어진 것만 같았다학교에서도그리고 집에서도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거대한 슬픔이 찾아왔다갑자기 엎드려 울기도 하고아픈 감정들을 잊으려 잠을 청하기도 했다어쩌면 엄마는 나보다 더 지쳐있었을 것이다일터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도 반기기는커녕 잔뜩 어지럽혀진 집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발 조금만이라도 날 도와줄 순 없는 거니엄마가 너무 힘들어.”

과거에 머문 나와 현실을 사는 엄마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무기력감과 자책감에 빠진 나는 스스로를 자주 동굴 속에 가두곤 했다.

넌 부족할 거 하나도 없어자꾸 쭈그러들지 말라니깐.”

아무리 불살라도 채워지지 않는 내 못난 구멍을 엄마는 몇 번이고 들여다보려 애썼다나는 그런 애정 어린 손길들을 뿌리치기 일쑤였고엄마와 나 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펑펑 쏟던 나는 마치 집 안의 먹구름이 아니었을까엄마한테 미안하면서도 나는 내 스스로의 무거운 감정들을 감당하느라 도무지 주위를 돌아볼 줄 몰랐다등딱지 같은 그 짐이 나를 짓눌러 학교에 걸어갈 수조차 없었다결국 자퇴를 결정했다그리고 새로운 곳대안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나는 곧장 짐을 싸 하숙집에 들어갔고여덟 살 이후 처음으로엄마와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교는 특성상 내가 스스로 주어진 공부를 해야만 했다과거로부터의 탈출이 간절했던 나는 전례 없는 큰 변화를 기회 삼아 살면서 처음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다.

널 사랑하는 데 자꾸 이유를 붙이려고 하지 마네가 스스로를 사랑받을 만하다고 인정하면다른 사람들도 무의식적으로 그걸 깨닫게 돼이유 없이 널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사랑스러워질 수 있어.”

선생님들은 무너져있으면서도 간절한 내가 얼마나 사랑스러우면서 귀한 사람인지또 내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도록 극진히 가르쳐 주셨다내가 한계에 다다라 스스로를 원망하고 좌절할 때마다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충고해 주시곤 했다사람의 눈을 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던가가족이 아닌 타인에게서 그런 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나는 학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갓 생긴 학교가 튼튼하게 서 갈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노력을 쏟았다내가 가진 작은 능력들이 여기저기에 좋은 쓰임새가 되는 것을 보고또 할 수 있다는희망과 소망이 가득한 말들을 자꾸 상처 위에 덧대기 시작하니 나의 굽었던 허리는 하늘을 향해가는 나무처럼 날마다 꼿꼿해져 갔다흐릿하기만 했던 나의 가능성들은 뚜렷해졌고 내가 짊어졌던 우울의 덩어리가 어느 순간 돌멩이만도 못한 작은 것으로 느껴졌다상처받을까 다가가기 두려워했던 사람들에게도 점점 나아갈 용기가 생겼다과거의 어두운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 같아 가지 못했던 집에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널찍이 벌어진 엄마와의 골도 어느샌가 좁혀져 있었다.

어느덧 일 년이 지나고 맞이한 초봄에우연히 엄마를 오래 알아온 한 교회 집사님을 만났고우리 엄마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아주 이른 20대 초반에 엄마의 엄마를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떠나보냈던 가슴 아픈엄마의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준비되지 않은 상을 치르고 몇 년 간 외로움이라는 충격에 빠져 아빠를 만나 도망치듯 결혼했고그렇게 나를 가진 것이었다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엄마도 그저 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에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그날 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그런데 내가 더 힘들게 했지너무 미안해잘못했어이제 와 말해서 더 미안해.”

묵묵히 목멘 사과를 듣던 엄마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고 말했다.

가연아엄마는 네 외할머니 잃고 나서 온 세상이 깜깜해 보였는데갓 나온 너를 안고 나서야세상이 컬러 사진처럼 변하는 것 같았어미안하단 말 안 해도 돼더 잘 해주지 못한 것 엄마도 미안해나도 내 엄마한테 못해줬던 것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는데또 다른 인연을 만나서 그 못해준 만큼을 채우게 되더라잃어버린 만큼 채워주는 만남이 있고상처받은 만큼 회복시켜주는 만남도 있어사람을 만난다는 건 그런 건가 봐나한테 못해줘서 후회한 만큼엄마 같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잘 해 드려그거면 돼.”

엄마의 목소리는 따뜻했다기다려온 사람처럼 담담하기도 했다흐릿한 줄만 알았던 엄마의 사랑이 그 어떤 것보다 견고했다꼭 붙들고 있던 외로움과 사랑받지 못했다는 어리석은 감정들이 와르르 무너져 뜨거운 안식처 한가운데 있는 내가 보였다엄마는 어른이면서도 자라나고 있는 사람이었다나와 같은 길을 걷는 동행자이기도 했다어떻게 보면 엄마라는 사람의 성장해가는 인생길에 작은 나를 초대해 나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당신의 삶을 완성해가는 것이었다과거를 딛고 올라선 엄마의 모습을 거울처럼 내 안에 담아나는 나를 묶었던 과거의 감정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엄마의 사랑을 조금 안다온갖 사랑 노래와 시에서 말하는 바다 같고 산 같은 그 사랑을이따금씩 심장 소리가 느껴진다엄마의 품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소리‘ 말이다엄마가 좋아하는 노래가 들릴 때나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뚜르르 하는 발신음을 들을 때또 마음이 약해져 익숙한 슬픔에 짓눌려 있을 때면 어김없이 그 소리가 들린다보이지 않는 탯줄처럼 엄마와 나를 잇는 그 순간마다그리움도 후회도 스쳐 지나갈 뿐 더 이상 나는 매달리지 않는다이제 나는 나를 채운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안다.

이맘때쯤 프리지어가 필 텐데.”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떠올랐다.

너희 엄마가 프리지어 좋아하는 것 아니?”

오랜만에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엄마는 내게 기억에 남을 만큼 기분 좋은 선물을 수도 없이 해줬는데나는 한 번도 기억될 만큼 좋은 선물을 해본 적이 없었다달라진 만큼또 상처가 아물어 나아진 만큼새로운 사랑을 전해주기로 했다조금만 있으면 환하게 꽃 필아직은 푸릇한그래서 더 설레는 프리지어를 한아름 들고서 나는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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